여름 영화 특집이라고 하곤 지난 주 <콜럼버스> 편에서도 결국 저희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이번 주도 마찬가지일 듯 합니다. 😇 푸른 바다와 호숫가, 작열하는 태양, 고민하는 청춘... 그런 것들은 분명 가득 담겨있지만 이 영화를 '여름 영화'라고 불러도 될 지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꼭 디핑🍟에서 소개하고 싶어 욕심을 내 보았습니다.

영화는 실제 코다였던 인물 베로니크 풀랭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2014)>의 리메이크 작품이라고 해요. 프랑스 오리지널 작품의 경우 설정 자체가 주는 감동과 감성적인 전달 자체에 치중했다면, 리메이크작인 <코다>는 그보단 좀 더 쉬운 상업 영화에 가깝습니다.

<코다>는 개봉 당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등 총 4개 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유수의 영화제들을 석권했는데요. 특히 이번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3관왕을 기록하는 의외(?)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의외라 표현한 것은 사실 저 개인만의 감상이 아니고 평론계 전반의 일관된 반응이예요. 이동진 평론가는 시상식 직후 업로드한 개인 유튜브 영상을 통해 '따뜻하고 기분 좋아지게끔 재미있게 만든 영화와 훌륭한 촬영, 연출, 각색 등으로 뛰어나게 만들어진 영화는 다르'기에 '이번 <코다>의 작품상 수상이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는 아쉬움의 소회를 밝혔답니다.

다만 <코다>의 수상에 대한 평들 가운데 '별 것 아닌 영화여도 시의성 짙은-소위 PC한 주제만 다루면 상을 주네'라는 식의 이야기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한, 따뜻하고 사려 깊게 잘 만든 영화임은 분명하거든요. 그 사려깊음의 자취는 무엇보다, 극을 표현하는데 있어 장애인의 당사자성을 우선으로 두었다는 점에 있을 거예요. 영화 속에서 농인으로 등장하는 루비의 가족들,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 역을 맡은 분들은 모두 실제 농인 연기자입니다. 어머니 역을 연기한 말리 매틀린은 1987년 <작은 신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도 있었고, 아버지 역의 트로이 코처는 이번 오스카 트로피를 포함해 미국 배우 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등 주요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트로피를 싹쓸이(!)한 최초의 농인 배우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장애를 표현하는 데에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둘 수 있는 어떤 대상화의 여지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제 헐리우드 씬에선 당연히, 마땅히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되었다고 보아집니다. 작년의 대작이었던 <이터널스>, <콰이어트 플레이스> 등에서 그 출발을 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시도들이 서툴지만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실제 농인 배우와 다운증후군 배우 겸 작가분의 덤덤하면서도 무게있는 연기를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남모를 아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안온하고 당연한 일상들을 담아내었습니다. 해당 드라마에 대한 호오와는 별개로(사실 저는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정말정말 의미있는 발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장애인의 장애인 연기는 무조건 잘못되었다, 실제 장애인이 연기하기만 하면 어떤 재현이건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제였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런 저런 말들이 많기는 했습니다만, 최근 얼어붙은 대중의 인식에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일부분이나마) 심어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있는 작품이었죠. 무의식적 편견이나 스테레오타입이 개입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떤 레퍼런스도 없이 전문가 자문과 자신의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만을 통해 우영우라는 자폐인 캐릭터를 연기해 낸 박은빈 배우의 사려깊음 역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 입장에서 감사히 인정해야 할 자기만의 투쟁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 결과값이 야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영향력과는 별개로 말이에요.

많은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저는 인플루언서 문상훈 씨가 특별출연한 3화를 가장 인상깊게 시청했어요. 반면에 지적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나쁜 남자를 사랑할 권리와 자유'의 충돌로 담아낸 10화는 다소 힘들었습니다. 문상훈 씨의 자폐 장애인 연기를 비장애인 시각에서 대상화한 '희화화'라 말할 수 있을까요? 여성 장애인의 입장에서의 현실적인 딜레마를 조명했다고 해서 그 재현이 응당 '있음직'한 재현이었을까요? 저는 둘 다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저 또한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는 문제이겠죠. 타자일 수 밖에 없는 입장에서 어떻게든 대상화될 수 밖에 없는 약자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고, 감상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쉽지 않음을 잊지 않는 것이, 비겁하지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코다> 이야기인 척 해놓고 (늘 그렇듯) 삼천포로 잔뜩 샜습니다만 😅 이런 삼천포라면 나름대로 가볼 법한, 아니 한 번쯤 가봐야 하는 곳 아니겠어요? 아무쪼록 장애인이 연기했다고 해서 다 좋은 콘텐츠만은 아닐 것인데 그럼에도 <코다>가 좋은 영화인 까닭. 스포일러긴 하지만 이미 예고편에도 노출된 스포일러니까 이야기할게요. 가족들이 처음 보러 온 루비의 무대, 감동적인 선율을 기대했을 관객들의 뒷통수 아니 고막을 치고... 볼륨이 점점 줄어듭니다. 딸의 노래를 들을 수 없지만, 그렇기에 노래하는 딸의 모습이 더욱 빛나게 보일 가족들의 심정을 아주 잠깐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명장면 명 연출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 피아노를 꽤 오래 쳤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악상 기호를 먼저 떠올렸어요. 악상 기호로서의 코다는, 악곡의 종결부에서 되돌이표 등을 통해 마지막 반복을 할 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생략하고 넘어가세요'라는 표시를 하기 위해 쓰이는 기호입니다. 가족들은 묵음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던 딸 루비의 무대, 하지만 결국에는 분명 그들이 공존해 나갈 삶 가운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소중한 순간이 되지 않을지... 저 혼자 코다라는 기호에 시적 허용을 남겨 봅니다. 😇🙏